★ 에스더 Esther 개요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2021. 5. 4. 08:28카테고리 없음

에스더서는 유대 민족 구원의 책입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예루살렘과 유대로 귀환한 유다인들의 국가 재건 이야기라면, 에스더서는 바사 제국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는 국내 관점에서 보면 느헤미야서에서 끝이 났습니다. 귀환 공동체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전도 재건했고 성벽도 재건했습니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유다인 디아스포라가 여전히 바사 제국에 남아있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이때 에스더서에서는 유다인 전체가 바사 제국 안에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게 된 사건을 언급합니다. 이미 바벨론 이주(BC 597년 2차 포로) 이후 119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의 생존권조차 위협받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마치 로마의 박해 시절에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이 로마제국을 직접 언급하지 못하고 바벨론이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주인공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는데도 자신이 유다인이라는 것조차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해외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유다인을 하나님은 잊으셨을까요? 민족도 신앙도 밝힐 수 없었던 그들을 하나님은 놀랍게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에스더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주는 반전의 책입니다. 이로써 역사서는 막을 내리고 다음은 시가서가 시작이 됩니다.

제목

본서의 명칭은 주인공 '에스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습니다. '에스더'(히, 하닷사, "도금량")란 이름은 "별"이란 뜻의 바사 이름입니다.

저자

본서를 기록한 인물의 특징은 첫째, 바사의 문화와 풍습, 언어와 예절에 아주 익숙한 인물이며, 둘째, 유다의 관습에 정통한 민족주의자이며, 셋째, 바사 궁궐을 출입하면서 메대와 바사의 사료나 왕실 기록 등을 쉽게 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유다 사람의 자손으로서 바사 제국의 고위직에 있었던 인물일 것입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본서를 모르드개가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혹자는 에스라나 느헤미야가 기록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9장 20절, 23절이나 10장 2-3절을 보면 모르드개가 3인칭으로 언급되어 모르드개가 저자와는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에스라서나 느헤미야서와 필치가 달라 같은 인물로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기록 연대

본서에는 바사 왕 아하수에르 왕의 통치 하에 일어난 사건들 중 포로민 출신 유다 여자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되는 내용과 유다 민족을 전멸시키려는 하만의 음모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되고 있습니다. 반면 이후 바사 수도 중 하나인 수산궁이 불에 타 버린 사건과 알렉산더 대왕이나 헬라 제국의 통치와 풍습, 문화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기록 시기는 아하수에로 왕이 죽은 후(B.C. 464년경) 수산궁이 불에 타기 이전에 어떤 시점(B.C. 43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배경

이 책은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경, 스 1-6장)과 학사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경, 스 7-10장) 사이에 바사 제국의 수도 수산에서 발생한 유다 백성의 구원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바사 제국은 중근동의 강대국인 바벨론을 무너뜨린 신흥패권국으로 동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헬라의 이오니아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남쪽으로는 페르시아 만, 북쪽으로는 메대 왕국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영토를 가진 고대 국가였습니다. 티그리스 강 연안 도시 닙불과 수산 등지에는 당시 유다 포로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바사 제국의 아하수에로(BC 486-465년)는 인도(인더스강)로부터 구스(에티오피아, 나일강 상류)까지 127도를 다스렸습니다. 아하수에로("영웅들의 아버지")는 바사 5대 왕으로 일반사의 크세르크세스 1세(BC 486-465년) 입니다. BC 486년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한 후 강경책을 펼쳤고, 바벨론의 반란을 진압한 후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BC 484-481년 그리스 정벌을 준비하면서 연회를 열었고, BC 480년 17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하여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 300인과 싸우고 아테네까지 진격했지만,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했습니다. BC 478년 페르세폴리스에 새 궁전을 세우는 방대한 건축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BC 465년 아들과 신하들의 쿠데타로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선왕 다리오의 그리스 정벌이라는 꿈을 이루려다 실패한 후 실정 한 왕이었습니다.

에스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탈무드에는 이 책에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거론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에게 당신의 거룩한 성호를 드러내지 않으신 것은 그들의 범죄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포로로 끌려간 당신의 백성에게 무관심하거나 그들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니다.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을 기억하고 지켜주셨다."
이런 사실은 이 책의 중심 사건인 부림일(Purim)의 기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에스더의 남편은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 BC 486-465년 통치)입니다. 그는 선왕 다리오 1세의 미완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 정벌을 계획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력하지 않은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었습니다. 결국 왕은 제국의 사활을 건 해외 정벌 프로젝트에 실패한 후, 에스더를 왕비로 세우기는 했지만 하만이라는 악인에게 의지하며 불안한 정국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모르드개의 충성과 에스더의 기도를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유다인을 구원하시고 악인 하만을 처형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반전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기념하여 유다인들은 부림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만이 부르("제비")를 뽑아 유다인을 처형하려던 날이 유다인 구원의 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하나님은 유다 민족의 멸절 가운데서 극적으로 구원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비록 오늘날 하나님의 모습도, 이름도 드러나지 않는 불신적 요소와 환경이 세상 도처에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잊지 않으시고 지키심으로써 당신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이루어가십니다.

내용과 구성

1-4장은 에스더의 왕후 등극과 하만의 유다인 학살 계획에 대한 이야기이며, 5-10장은 왕이 모르드개를 높이고 에스더가 왕에게 고발하여 하만을 처형하고 유다인을 구원한 이야기입니다.

유다인의 위험 (1-4장)
왕후 에스더 1-2장 에스더가 왕후로 선발됨
대적자 하만 3-4장 하만이 유다인을 대적함
유다인의 승리
하만의 처형 5-7장 하만이 음모로 처형됨
반전의 승리 8-10장 유다인이 원수를 갚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