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선교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다 (사도행전 21-28장)

2021. 6. 18. 16:00카테고리 없음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에서 재판받다가 로마로 이송되었고 거기서도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01. 바울의 체포(21-23장)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변명한 뒤에 가이사랴로 이송되었다.
02. 바울의 재판(24-26장) 바울은 총독들과 아그립바왕에게 신앙을 변명했고 황제에게 상소했다.
03. 바울의 이송(27장) 바울은 죄수로 로마에 이송되다가 광풍을 만났지만 사람들을 구원해냈다.
04. 바울의 증거(28장) 바울은 로마로 들어가 2년간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를 증거했다.

바울의 체포와 투옥

  •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21:30)에서 체포됐고 로마군의 영내(안토니오 요새, 21:34)에 있다가 산헤드린("함께 모여 앉는다") 공회(반로마 투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활동이 허용된, 71명의 대표로 구성된 유대인 최고 자치기구, 22:30)에서 변명했다. 로마군의 호위 아래 안디바드리(대헤롯이 부친 안디바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도시로 국제적인 고속도로가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64km, 가이사랴에서 40km에 위치, 22:31)를 지나 가이사랴(대헤롯이 가시아 아구스도를 기리며 건설한 항구도시로 로마 총독부와 영내가 있었다, 22:33)로 이송됐다.

바울의 선교여행 총정리

  • 바울의 로마행(4차 선교여행, 27:1-28:15)-무라는 소아시아 루기아 지방의 수도로 애굽 및 로마 항로상 주요 무역항이었다. 미항(반어법적인 표현)은 그레데섬의 남쪽에 위치한 조그만 항구였고, 뵈닉스는 그레데섬의 남서쪽 항구였다. 스르디스는 그레데섬 남서쪽의 북아프리카 해안에 돌출한 모래톱이었다. 멜리데(몰타)는 지중해 시실리섬 남쪽 95km에 위치한 섬으로 역사적으로 페니키아, 카르타고, 로마의 식민지였다. 수라구사(Syra-cuse)는 시실리섬의 항구도시이며, 레기온은 이탈리아 서남단의 항구다. 보디올(이탈리아 나폴리만의 작은 항구) 압비오광장은 여행자들이 말을 바꿔 타던 중요한 숙박지(트레이스타베르네="세 개의 여관")였다.
  • 바울의 5차 선교여행-AD 62년 바울은 2년간 풀려나 서바나(스페인, 제국의 서쪽 끝, 바울이 땅 끝이라 생각했던 장소, 롬15:28)를 비롯해 그레데, 에베소, 마게도냐, 헬라 교회들을 방문했고, AD 64년에 네로에게 다시 체포됐다. 

01. 바울의 체포(21-23장)

① (21-22장) <체포>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두로의 제자들의 경고와 아가보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주를 위해 죽을 각오라고 답했습니다. 야고보의 권면대로 결례를 행했습니다. 야고보는 유대인들과의 평화 공존과 타협을 원했습니다. 아시아의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사도 바울을 잡았습니다. 로마군 영내 앞에서 바울이 변명하며 이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의 회심간증했습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바울처럼 주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면 주께서 위기 상황에서 살려 내십니다.

② (23장) <이송>

바울은 공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고 주님은 그가 로마에서도 증언할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정반대의 부활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음모를 바울의 생질이 알려주어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군 470명을 동원해서 가이사랴 총독 벨릭스가 있는 영내까지 이송했습니다. 대헤롯이 지은 헤롯궁이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자 한 사람을 지키시기 위해 사람들을 움직이십니다.

바울의 동역자 누가의 동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바울과 동역자 누가를 뜻합니다.

  1. 바울과 2차 선교(유럽)에 동역했다.
  2. 바울과 3차 선교(아시아)에 동역했다.
  3. 바울과 예루살렘에도 동행했다.
  4. 바울과 로마 감옥에도 동행했다. "사랑받는 의원 누가"(골4:14; 몬1:24), 1차 투옥 때.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딤후4:11), 2차 투옥 때. 

고질병(고후12:7-9)에 시달리면서도 쉼 없이 선교했던 바울에게 의사 누가는 하나님의 큰 위로의 손길이었습니다. 

02. 바울의 재판(24-26장)

① (24장) <벨릭스 앞>

바울은 벨릭스에게 심문받았습니다.

  1. 고발인 측은 대제사장 아나니아(AD 4-58년, 제사장들의 재산을 강탈해서 로마에 뇌물로 바친 탐욕적이고 정치적인 인물)와 당대 로마 제국에서 유명 변호사였던 더둘로(헬라파 유대인으로 추정)였다.
  2. 재판관인 총독 벨릭스는 뇌물과 여색을 탐하고 반대파를 암살하여 강도 떼와 거래하는 등 온갖 비위 행위를 저지르다가 유대인들의 고발로 로마에소환된 인물이었다.
  3. 고발내용은 바울이 전염병 같은 자, 천하를 소요케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이었다.
  4. 피고인 바울은 자신에게는 소동 죄가 없다고 변명하면서 이때를 기회 삼아 부활 신앙을 전했다.

악인들을 마주하게 될 때에도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믿음을 본받고 싶습니다(딤후4:2). 바울은 벨릭스와 그의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에게 의와 절제와 심판을 강론했습니다.

② (25:1-12) <베스도 앞>

바울은 베스도에게 심문받았습니다.

  1. 고발인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었다.
  2. 재판관인 총독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사도 바울을 협박했다. 베스도는 AD 60년에 부임했으나 62년에 죽었다.
  3. 고발내용은 다양했으나 증거 불충분이었다.
  4. 피고인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했다.

바울에게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리라는 일념이 있었습니다.

③ (25:13-26장) <아그립바 앞>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심문받았습니다.

  1. 의뢰인인 베스도는 상소 자료가 필요해서 바울 사건을 아그립바왕에게 설명했다.
  2. 재판관인 아그립바왕(2세, 누이 버니게와의 근친상간으로 유대인들의 미움을 샀다. 그는 헤롯 가의 마지막 통치자로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로마에 망명해 행정관이 됐다)은 바울이 무죄임을 알았다.
  3. 피고인 바울은 다메섹 회심을 간증하며, 왕과 모든 배석자들을 전도하려고 했다.

바울은 자신을 심문하는 법정마저도 복음 증거의 자리로 바꾸었습니다!

03. 바울의 이송(27장)

바울은 아드라뭇데노(터키 북서쪽 항구) 배에서 알렉산드리아 배(애굽 북쪽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까지 운항하는 곡물 운반선)로 옮겨 탔습니다. 금식하는 절기(속죄일, 10월)가 지나면 위험한데도 편한 곳에서 겨울을 보내겠다고 무리하게 항해했습니다. 항해하자마자 유라굴로("북동풍", 그레데섬 중앙에 있는 2,456m의 이다산맥의 영향을 받은 기류 충돌로 생기는 광풍)를 만났습니다. 죄수 바울이 오히려 선원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했습니다. 바울은 아드리아해(이탈리아의 동해) 근처에서 사공들의 도주를 막았고 276명이 안전하게 전원 상륙했습니다. 

사명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뿐더러 위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04. 바울의 증거(28장)

멜리데섬 원주민(야만인이 아니라 토착민)의 도움을 받았고, 바울은 독사에 물리고도 멀쩡했습니다(막16:18). 3개월 후(겨울이 지난 뒤) 알렉산드리아 배(디오스구로 장식-디오스구로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이다)를 타고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선교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 셋집에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강론했고 2년간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증거했습니다. 주님은 나도 사도행전을 이어서 써내려가기 원하십니다.

  • 예수님의 이름은 내 생명을 바쳐 증거할 이름이십니다(21:13).
  • 예수님의 이름은 천하를 뒤흔드시는 능력의 이름이십니다(24:5).
  • 예수님은 기꺼이 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의 목숨을 건지시는 주님이십니다(27:24, 2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