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귀환자들이 성전을 재건하고 신앙을 개혁하다 (에스라 1-10장)

2021. 5. 1. 22:35카테고리 없음

1차 귀환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고 2차 귀환자들은 신앙 회복에 힘썼습니다.
01. 성전 재건(1-6장) 포로귀환자들은 온갖 훼방에도 성전 건축을 완성해서 봉헌했습니다.
02. 신앙 개혁(7-10장) 에스라와 2차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회개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01. 성전 재건(1-6장)

① (1장) <고레스 칙령>

고레스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남아있는 백성이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령했고, 이에 자원하는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 및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일어났으며, 성전 기명들은 총독 세스바살에게 맡겨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기명은 3차 바벨론 유수 때 탈취되었던 것들인데, 바벨론 멸망시 벨사살이 술잔치에 사용했었습니다. 1차 귀환 때 지도자인 유다 총독 세스바살이 책임을 지고 운반했습니다. 

세스바살은 바벨론식 이름으로 "태양신이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귀중한 성전 보물의 운반을 맡은 책임자로 고레스 치하에서 초대 유다 총독 임명자인데, 이후 기록에는 스룹바벨만 등장합니다. 고레스 조서 회고에서 재등장하기도 하는데, 세스바살은 다른 인물이 아닌 스룹바벨로 추정됩니다.

② (2장) <1차 귀환자>

스룹바벨은 남유다 19대 왕 여호야긴의 손자이고, 예수아는 대제사장 스라야의 손자이며, 느헤미야는 1세기 후에 귀환했던 아닥사스다왕의 술관원장인 느헤미야와는 동명이인입니다.

1차 귀환자의 주요 구성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또한 성소 업무를 담당할 제사장들과 레위인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의 자손들이 있었습니다. 느디님 사람들("바쳐진 사람들")은 기브온의 전쟁포로들이 성전 사역에 바쳐짐으로 인해서 시작된 성전 봉사자(temple servant)들이고,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솔로몬이 일으킨 역군들로서 가나안 원주민으로 추정됩니다. 느디님 사람들이나 솔로몬의 신하들은 이방인의 자손인데도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③ (3장) <성전 착공>

귀환 7월 1일부터 상번제를 시작했고, 솔로몬 성전 때처럼 두로와 시돈의 도움을 받아 백향목을 공급받은 뒤, 2년 2원(시브월)에 예수아와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성전 공사를 시작했으니 이는 4-5월이 건기의 시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 기초를 놓을 때 젊은이들은 기뻐 찬양했지만 고령자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솔로몬 성전이 기억나서 대성통곡했습니다.

④ (4장) <건축 중단>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사마리아인들)이 일어나 혼혈정책을 펼쳤던 앗수르 왕 에살핫돈(BC 681-669년, 왕하 17:24)을 언급하며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귀호나 공동체는 그들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위치한 북쪽은 우상숭배와 혼합주의 신앙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단호했습니다. 그리고 혈통상 이방인 내지 혼혈이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주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역대기가 북왕국에 단호했던 이유도 동일했습니다.

4장에는 사마리아인이 귀환 공동체를 괴롭힌 사건들을 모두 모아서 기록했습니다. 이들이 아하수에로 즉위 때(BC 486년)고발한 것도, 아닥사스다왕에게 고발하여 중단시킨 것도, 성전 재건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벽 재건을 방해하려는 고발장을 아하수에로에게 제출했고, 아닥사스다가 중단시킨 이야기는 삽입된 부분입니다. 

성전 재건이 중단된 것은 다니엘 10장 1절~2절에 근거하여 고레스 3년(BC 536년)부터 다리오 1세 2년(BC 520년)까지 16년간으로 추정됩니다. 

에스라서에 나오는 바사 왕 진상서와 조서들, 아닥사스다왕의 조서에는 아람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바사시대 국제 공용어는 아람어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로마시대의 국제 공용어가 헬라어였던 것과 같습니다.

⑤ (5장) <건축 재개>

다리오 1세 2년(BC 520년)에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으로 성전공사를 재개했습니다. 그러자 유브라데강 건너편 총독이 다리오에게 고발했으나 다리오는 고레스의 조서(BC 538년)를 발견하고 건축 재개를 허락했습니다. 

⑥ (6장) <성전 완공>

악메다는 본래 메대 제국의 수도였는데 이후 바사 왕의 여름 휴양지가 되었으며, 이곳에 국가적인 보물들과 함께 중요 문서를 보관해 두었습니다. 성전 완공은 다리오왕 6년(BC 516년) 아달월(2-3월) 3일로, 총 20년이 걸렸습니다. 다리오를 "앗수르 왕"이라고 부른 것은, 페르시아 왕들은 앗수르 왕 및 바벨론 왕의 후계자임을 자처했고 실제로 공식 명칭에 함께 불렀기 때문입니다.

가장 처음 만든 예배처소는 모세의 장막이었습니다. 다윗의 장막은 가장 친밀했던 예배자들의 처소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성전은 가장 화려했던 예배처소였습니다. 그후 스룹바벨 성전은 가장 초라했던 예배처소였습니다. 헤롯 대성전은 가장 대규모의 예배처소였습니다. 성전은 건물이 핵심이 아니라 예배자들이 핵심입니다.

02. 신앙 개혁(7-10장)

① (7장) <에스라의 결심>

아닥사스다는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16대손 대제사장의 가문이었습니다. 바사 왕의 총애를 받았던 에스라는 당시 학자("서기관")로 다니엘처럼 신앙적인 결심을 했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받고 2차 귀환을 주도했으며 귀환 공동체의 신앙 개혁을 이끈 지도자였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왕 7년(BC 458년) 1월 1일에 출발해 5월 1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② (8장) <2차 귀환자>

에스라는 백성과 제사장, 레위인, 느디님 사람들과 함께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하고 성전에 바칠 예물을 갖고 출발하여 안전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③ (9-10장) <신앙개혁 추진>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한 죄(9:1)를 회개하고 에스라는 이방인 아내와 자녀들을 율법대로 다 내보내도록 했습니다. 귀환자들이 이방인 가족을 내보내는 일은 가나안 정복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회복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1:1-4).
  •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담대히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5:1-2).
  • 금식하며 간구할 때 자기 백성을 친히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8: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