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왕국도 결국 바벨론에 멸망당하다 (열왕기하 18-25장)

2021. 4. 24. 16:00카테고리 없음

남유다는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빼고 내리 악한 왕들이 등장했고 결국 바벨론에 멸망당했습니다.
01. 히스기야의 노력(18-21장) 히스기야는 선하였지만 므낫세와 아몬왕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02. 남유다의 멸망(22-25장) 요시야는 선했지만 이후 왕들은 다 악하여서 바벨론에 멸망당했습니다.

01. 히스기야의 노력(18-21장)

① (18:1-12) <남 13. 히스기야의 개혁>

히스기야("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종교개혁을 단행했고, 살만에셀이 죽고 사르곤 2세가 즉위하는 혼란기에 부친 아하스의 친앗수르 정책을 버렸습니다(7-9절).

히스기야는 강한 독립의지로 앗수르를 배반했지만(18:7) 산헤립은 1차 침공에서 남왕국 46개 성읍을 점령했고 20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2차 침공에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18:17 이하) 히스기야를 '새장에 든 새'라고 조롱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으로 민간신앙의 뿌리인 산당들을 제거했고, 바알의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찍었으며, 모세의 놋뱀인 느후사단("놋 조각")을 부쉈습니다. 이것은 BC 8세기가 앗수르의 혼란기여서 가능했습니다.

남유다 왕가의 주요 특징
1. 1-3대: 북이스라엘과 전쟁
2. 4-7대: 아합 가문과 연합
3. 히스기야: 제1대 종교개혁
4. 아하스, 므낫세: 극한 죄악
5. 요시야: 제2대 종교개혁
왕의 수 20명
선한 왕 8명
모반사건 1건

② (18:13-37) <앗수르의 침공>

BC 701년 산헤립은 애굽 침공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남유다를 1차 침공해 46개 성읍을 점령했고(13절), BC 699년 2차 침공해 랍사게가 협박과 회유를 했습니다.

③ (19장) <히스기야의 기도>

히스기야는 자신의 위기보다 하나님을 비방한 것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고, 하나님의 응답대로 산헤립은 디르하가(구스 왕인 동시에 애굽 25대 왕조의 세 번째 바로)의 진군 소식 및 하룻밤 새 앗수르 대군 18만 5천 명이 죽는 사건 때문에 고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거기서 아들들이 그를 암살했습니다.

④ (20장) <히스기야의 치유>

히스기야는 불치병을 치유받고 15년간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앗수르에 반란하여 독립하려던 차에 남유다와 연대하고자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도 앗수르를 견제하려고 그들을 환대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보다 열강을 의지함으로 인해 책망을 받았습니다.

⑤ (21:1-18) <남 14. 므낫세의 죄악>

므낫세는 남유다의 최장 기간(55년) 통치자이자 최악의 왕이었습니다. 

⑥ (21:19-26) <남 15. 아몬의 죄악>

아몬(애굽의 풍요의 신 이름)은 부친 므낫세처럼 우상을 섬겼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을 따라 우상을 숭배했고, 여호와의 성전을 우상으로 더럽혔으며, 가나안인보다 더 가증했습니다. 또한 무죄한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하나님의 은혜의 한계점을 넘었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복의 약속뿐만 아니라 심판의 약속도 지키십니다(신 18:36).

02. 남유다의 멸망(22-25장)

① (22:1-23:30) <남 16. 요시야의 개혁>

요시야는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BC 625년(요시아 14년) 앗수르바니팔이 죽자 앗수르는 쇠퇴했고, 바벨론의 나보폴라살(BC 625-605)과 메대가 앗수르를 계속 침공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신명기 법전에 근거한 개혁이었습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 일월성신을 버렸습니다. 성전 내 남창과 여사제의 집을 헐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산당들을 제거하고, 아하스와 므낫세의 제단을 헐었습니다. 300년 된 솔로몬의 산당들을 폐했고, 벧엘의 금송아지 제단을 헐었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도시들도 정화했고, 사사시대 이래 최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또한 무당과 가정신(드라빔)도 제거했습니다. 이는 BC 7세기가 앗수르의 쇠퇴기여서 가능했습니다.

원수지간이던 애굽과 앗수르가 연대할 만큼 바벨론이 막강했는데 요시야가 감히 나섰다가 전사했습니다. 결국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로 느고와 앗수르를 제압했습니다. 

하지만 선한 요시야는 일찍 죽습니다. 그는 애굽-앗수르 연대를 막다가 실패했는데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 착오였습니다. 히스기야 이후 친바벨론 기조를 유지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기로 결정하신 후 요시야가 바벨론 포로가 되지 않게 하심이었습니다. 

② (23:31-35) <남 17. 여호아하스의 쇠락>

여호아하스는 바로 느고에게 잡혀가 죽었습니다.

③ (23:36-24:7) <남 18. 여호야김의 쇠락>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배반했다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④ (24:8-17) <남 19. 여호야긴의 쇠락>

여호야긴도 악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⑤ (24:18-25:21) <남 20. 시드기야의 멸망>

시드기야도 악행하다가 결국 나라가 바벨론에 패망했습니다.

BC 605년(18대 여호야김 4년) 1차 침공 및 1차 포로 사건이 있었고, BC 602년(18대 여호야김 6년) 2차 침공 및 여호야김 포로/회복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BC 597년(19대 여호야긴 원년) 3차 침공 및 2차 포로(여호야긴, 에스겔, 모르드개, 용사, 장인들 포로)가 있었습니다. BC 588년(20대 시드기야 9~11년)에는 4차 침공 및 18개월간 포위 사건이 있었고, BC 586년(20대 시드기야 11년)에는 예루살렘 함락 및 3차 포로(시드기야 포로)가 있었습니다. 남왕국의 멸망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린 결과였습니다.

⑥ (25:22-30) <남은 자의 역사와 소망>

스달리야 총독을 이스마엘이 암살한 혼란기에 백성은 갈대아인이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주했습니다. 여호야긴(반역의 전력 없이 포로 된 유다왕)의 회복은 장차 임할 하나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짧게는 70년 만에 이루어질 바벨론의 포로 귀환, 길게는 1948년에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독립에 대한 예표적 사건이었습니다. "2,534년 만에 되찾은 나라"(모세 다얀, 이스라엘의 4대 국방부 장관)가 바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역사의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의 여명이 비춰 옵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고 순전한 사람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8:1-4).
  • 하나님께 의지하고 연합하는 자의 길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8:5-7).
  • 여호와만이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9: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