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한 이방 여인 룻 (룻기 1-4장)

2021. 4. 13. 12:44카테고리 없음

모압에서 가족을 잃은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친족 보아스를 통해 인생이 회복되었습니다.
01. 나오미의 실패(1장) 기근으로 모압에 갔던 나오미는 실패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02. 룻의 회복(2-4장) 룻은 이삭을 줍다가 만난 보아스와 결혼했고 다윗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01. 나오미의 실패(1장)

① (1-5절) <나오미의 실패>

1장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기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사사들이 다스리던 매우 어두웠던 시기가 배경입니다. 흉년은 타락한 이스라엘이 회개하라는 신호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 가족은 기근으로 힘들어하다가 약속의 땅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찾아 이스라엘의 원수인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양식을 찾아 멀리 갔다가 모압에서 소중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오미와 그녀의 두 며느리뿐입니다.

사사시대에 믿음의 가정들도 신앙적으로 무너져 있었습니다. 엘리멜렉("내 하나님이 왕이다")이라는 이름이 무색합니다. 말론("병약")과 기룐("낭비")은 온전하지 못한 인생들이었습니다. 나오미와 엘리메렉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세상의 양식을 좇았던 것입니다.

② (6-14절) <나오미의 친구>

나오미가 모압에 갔던 것도,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도, 전부 양식(6절) 때문이었습니다. 나오미의 실패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이 아닌 물질을 좇아 살 때의 비애를 보여줍니다.

며느리 룻은 이스라엘 관습에 따라 형사취수도 불가능하니 재혼이 마땅한 상황이었습니다(9-12절). 고대에 남자 없이 여자 혼자는 생존 자체가 어려웠습니다(13절). 시모 나오미는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며느리에게 모압에 남으라고 권유합니다. 며느리 오르바("암사슴")는 떠났고 룻("친구, 미인")은 따라왔습니다. 룻은 홀로 된 시모 나오미의 친구가 되어주었는데 그녀의 다정한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룻은 "내 하나님, 내 백성"으로 고백하는 인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은 삶의 헌신을 통해 결국 믿음의 계보에 오른 것입니다(마 1:5).  

③ (15-22절) <나오미의 귀환>

나오미("달콤하다")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자신을 마라("쓰다")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마라는 광야에 물이 써서 못 마셨던 샘의 이름입니다(출 15:23). 신약의 마리아("비통함, 슬픔")의 이름도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나오미를 괴롭게 하신 것은 나오미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삿 21:25).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의 양식을 좇았기 때문입니다(1, 6절).

보리 추수(22절)는 4월 중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는 마침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였습니다.

02. 룻의 회복(2-4장)

① (2장) <보아스와의 만남>

2장은 나오미와 룻은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할지 계획하고 논의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식량을 찾던 룻이 나가서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되고 보아스는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룻을 "모압 소녀"(5-6절)라 부른 것은 이른 나이에 자녀도 없이 남편을 잃은 젊은 처자였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민첩하다, 유능하다")는 야간작업을 하는 타작마당에서 일꾼들과 함께 밤을 새웠던 것(3:7)으로 보아 성실한 리더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농장의 지주가 직접 추수하는 들판에 나와서 일꾼들을 격려하고 가난한 이웃을 축복했습니다(4절). 또한 친족의 기업을 무르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4:1-10). 

보아스와 룻은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성실함과 진정성 및 주변 사람을 돌봄에 있어서 비슷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죽은 가족에게도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인데 살아남은 우리에게도 은혜를 베푼다며 그를 축복했습니다(20절). 그리고 보아스는 기업을 무를 자라고 말합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어떤 남자가 아내나 자녀나 땅을 남기고 죽었을 때 친족이 그 과부와 결혼하고 땅을 차지하여 가문을 지키고 유지할 책임을 지는 관습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우리 영혼의 고엘(kinsman-redeemer) 즉 기업 무를 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② (3장) <보아스에게 요청함>

3장은 나오미와 룻이 보아스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고자 계획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룻은 시모의 지시대로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가서 그에게 기업을 무르도록 요청했습니다. 타작마당은 주로 반경 15m의 평지였으며 도리깨로 곡식을 두들겨서 겨는 바람에 날리고 알곡만 모으는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5월에는 낮에 바람이 없기 때문에 선선한 밤에 작업을 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신실함에 또 한 번 감탄하면서 룻을 "현숙한 여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잠언 31장에 나오는 표현과 같습니다. 보아스가 룻이 베푼 인애를 언급한 것은(10절), 룻이 시모를 봉양하고 끊어진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고엘 제도는 있었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나이(10절), 경제적인 이익(4:6), 이기적인 동기(창 38:9) 때문에 이 제도를 잘 지키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옷자락(히, 카나프)으로 덮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이 축복한 대로(2:12)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의 날개(히, 카나프, 마 23:37)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임재의 옷자락으로 성전을 덮으십니다(사 6:1). 혈루병 여인도 주님의 옷자락을 잡고 치유받았습니다(마 9:20). 가족과 이웃의 옷자락을 베는 삶(삼상 15:27)이 아니라 내 옷자락으로 그들을 덮어주는 삶은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의 축복이 임합니다. 내 삶의 옷자락을 넓혀 가족과 이웃을 품어주는 인생이 되어야겠습니다.

보아스가 여섯 번 보리를 지워주는(15절) 배려를 한 것은 6년의 수고 뒤 회복의 때가 오게 된다는 예언적이고 의지적인 행동이었습니다(신 15:1-15).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로맨스 스토리지만 그저 단순한 로맨스는 아닙니다. 룻은 젊은 미인이었지만 가진 것 없는 처지에 이방인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재력가에 친절한 남자지만 시아버지 뻘되는 할아버지였습니다. 둘 다 가정과 가문의 회복을 위해 희생한 것입니다. 

내 눈에 좋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선택해 주신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결혼의 기초는 낭만이 아니라 헌신입니다. 가정의 본질은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가정은 놀이터나 도피처가 아니라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야 할 사명지입니다.

③ (4장) <보아스의 기업 무름>

보아스는 성문에서 기업 무르는 일을 진행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성문 앞은 시장터(왕하 7:1)요 재판정(삼하 15:2)이었습니다.

보아스보다 가까운 친족이 먼저 책임이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소유지를 무르라고 할 때 긍정했던 것은 후대가 없는 친족의 기업은 희년이 와도 돌아갈 곳이 없어 자신의 소유가 되는 투자였기 때문입니다(4절). 룻을 사서 죽은 자의 기업을 이으라고 하자 거절했는데 이는 룻의 자녀가 자신이 무른 기업의 상속자가 된다면 남 좋은 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5절).

남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내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서두에서 룻이 신실함을 보여주었다면 결론에서 보아스가 신실함을 보여주면서 룻의 가문에 온전한 회복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발을 벗은 이유는(4:7-8) 친족으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신 25:9-10). 땅을 밟는 신발을 벗었으므로 기업이 되는 땅을 무르지 않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우리의 기업 무를 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 회복하시는 반전의 역사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다말(창 38:29)을 언급하며 축복했습니다. 왜냐면 계대결혼법에 따라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가 보아스의 직계조상이기 때문입니다. 룻은 다말과 함께 메시아의 계보에 올랐습니다(마 1:5). 나오미는 손주로 인해 인생의 기쁨을 회복했습니다(15절). 오벳은 장차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 인물입니다.

계대결혼법상 오벳은 말론의 족보에 올라야 했지만 보아스의 족보에 오른 것(21절)을 볼 때, 보아스가 그를 양자로 들인 것 같습니다. 후일 다윗이 부모를 모압에 피신시킨 이유는 다윗의 할머니 룻이 모압인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삼상 22:3).

룻기와 에스더서는 각각 이방인 여인과 유대인 여인을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스토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도 유대인도 전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사사시대 360년간 무너지자 이방 여인 룻을 통해 다시 소망을 지피셨습니다. 

  • 하나님께 돌아온 자녀를 돌보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1).
  • 우연 속에 필연으로 섭리하사 그분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2:3).
  • 한 사람의 인생과 한 가정의 회복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4: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