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세 번째 설교에서 복과 저주를 선포하고 운명하다 (신명기 27-34장)

2021. 4. 7. 20:40카테고리 없음

모세는 복과 저주를 선포하고 12지파를 축복한 뒤 여호수아를 세우고 운명했습니다.
01. 복과 저주(27-30장) 모세는 순종에 따른 복과 저주를 선포한 뒤 생명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02. 모세와 여호수아(31-34장) 모세는 경고의 노래를 부르고 12지파를 축복한 뒤 운명했습니다.

01. 복과 저주(27-30장)

① (27장) <복과 저주 선포>

모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청종하고 사랑하라고 당부합니다. 먼저 경고와 최후통첩을 하면서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고 하늘의 큰 복을 받지만 듣지 않고 거역하면 기근, 전염병, 황폐함을 겪고 결국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큰 돌들을 세워(글자가 잘 보이게) 석회를 바르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록해 에발산에 세우게 했습니다(1-4절).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세겜 골짜기, 즉 약속의 땅 중심부에서 남과 북으로 마주 보고 있는 산입니다. 그리심산은 '축복산'으로 855m 숲이 울창한 산이며, 에발산은 '저주산'으로 920m 황폐한 바위산입니다.

축복을 받은 지파는 레아의 장자와 막내를 제외한 4명과 라헬 2명이 있습니다. 즉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셈, 베냐민 입니다. 저주를 받은 지파는 레아의 장자와 막내 그리고 첩 빌하와 실바 각 2명입니다. 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축복산과 저주산에 지파가 나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심장부에서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선언하셨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웠고(BC 432년) 오늘날까지 이곳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요 4:20).

② (28장) <복과 저주 예고>

28장은 신명기 전체의 내용을 요약한 핵심 내용입니다. 순종의 복(1-14절, 총 14절)보다 불순종의 저주(15-68절, 총 54절)가 4배나 많습니다. 순종하면 만복이 따라오겠지만(2절) 불순종하면 온갖 저주가 따라올 것입니다(15절).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잔소리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칭찬보다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대 잘못된 길로 가지 말라는 간절한 부탁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2절; 창 1:28, 12:2).

하나님은 우리를 겁주는 두려운 분이 아니라 약속대로 행하시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1절의 '삼가 듣는다'는 말을 직역하면 "경청하려고 경청한다"는 뜻이며, 2절의 '청종한다'도 동일한 "경청한다"(히, 샤마아)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들으라(쉐마) 이스라엘"로 시작해서 "들으라"로 끝나는 책입니다. 왜냐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요(롬 10:17), 우리를 성민(聖民)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9절). "성민"이라는 표현이 신명기에만 5번 나옵니다(7:6, 14:2, 21, 26:19, 28:9).

말씀에 청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절대자의 절대 진리에 순종할 때에만 절대적인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청종하면 내가 복을 좇지 않아도 복이 나를 좇아와 붙잡습니다(2절). 셋째, 불순종하면 내가 저주를 피해 다녀도 저주가 나를 좇아와 붙잡습니다(15절). 저주는 히브리어로 '켈랄라'(11:26)라는 단어인데 '무가치하게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 것인지, 무가치한 존재로 살 것인지 우리는 오늘도 선택해야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악은 하나님을 망각하는 죄입니다(20절). 말씀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잊는 것이 재앙의 시작입니다. 이로 인해 전염병, 폐병, 열병, 염증, 가뭄, 강풍 피해, 농작물 피해, 사막화, 기후변화가 진행될 것이고(21-24절), 포로로 잡혀갈 것이고(25절), 정신병, 우울증에 빠질 것입니다(28절).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독수리"(49절) 같은 민족은 멀리 북방에서 날아오는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등을 뜻합니다. 

③ (29장) <모압 평지 언약>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언약과 별개로 모압 평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1절). 이미 주신 율법(출애굽기)을 재차 선포(신명기)한 것처럼, 언약도 재차 세우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광야 2세대를 위해서입니다(2절).

마음과 눈과 귀를 닫았다는 것(4절)은 목이 뻣뻣하고 패역한 1세대(출 32:9)에 대한 책망입니다. 광야 40년 여정을 통해 순종의 훈련을 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양식을 주심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5-6절). 이 언약에는 지도자와 남녀노소 백성들과 이방인과 종, 후손들까지 포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족장시대부터 꿈꾸셨던 로망은 그들이 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나라였습니다. 가나안에 진입하기 직전에 가진 영적 리마인드 웨딩이었습니다.

29절에 감추어진 일이란 인간의 힘과 지혜로 알 수 없는 하나님께 속한 신비의 영역입니다. 성경의 난제와 신비들은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타난 일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을 통해 반복적으로 알려주시는 계시의 영역입니다. 이미 계시해 주신 구원과 심판, 축복과 경고의 말씀에 대해서는 신실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대하는 두 가지 균형 잡힌 태도를 가져야겠습니다.

④ (30장) <언약의 비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 모든 저주의 말씀을 듣고도 언약을 버려 열방에 흩어졌을지라도, 그들이 돌이키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4절, 렘 29:10).

모세는 결정을 강요합니다. 그가 말하길 "내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선과 악을 네 앞에 두었은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청종함으로 생명을 택하라!"(145-20)고 합니다. 

성경 말씀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은 어렵지도 않고 멀지도 않습니다(11절). 말씀이 하늘 위나 바다 건너에 있는 게 아니라 매우 가까워서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습니다. 신의 언어가 인간이 해석할 수조차 없는 하늘의 신비한 언어로 쓰였다면, 어느 외딴섬에 비밀문서로 숨겨져 있다면, 말씀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신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로 찾아오셨습니다(언어의 성육신). 그래도 인간이 말씀을 거부하자 말씀이신 그분께서 직접 오셨던 것입니다(롬 10:6-10). 누구도 말씀이 어렵다 모른다 핑계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복 받는 것은 오롯이 인간의 자발적인 선택입니다(15-20절). 나에게 다가오신 말씀에 이제는 나도 다가가야겠습니다.

모세의 이 생생한 비유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집스럽고 완악한 마음은 모든 인간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에덴동산의 반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선악을 정의하여 하나님의 선한 세상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켜 진심으로 그를 청종하고 사랑하게 되어 진정한 생명에 이르게 하실 거라 말합니다. 이 약속은 후에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새 마음에 대한 소망으로 선포합니다(예레미야 31장, 에스겔 36장). 

02. 모세와 여호수아(31-34장)

① (31장) <새 언약의 중재자>

모세는 120세에 은퇴 선언을 하고 여호수아를 후임자로 세우면서(2-3절), 사람은 떠나도 하나님은 영원히 동행하심을 말했고(8절), "이율법"(9, 26절), 즉 신명기 법전을 면제년마다 낭독하여 백성이 듣도록 했습니다(10-11절).

하나님께서 실패를 예상하시고도 왜 계속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최후 명령을 하십니다(14절).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을 것이고(16절) 여호수아는 백성을 약속의 땅에 데려가리라고(23절). 이것이 모세에게는 유언적 메시지였다면 여호수아에게는 비전적 메시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고 언약을 배반하여 재앙이 임할 것을 이미 예상하셨습니다(16-18절). 이스라엘의 장래 역사를 낙관하신 게 아니라 비관하셨는데도 하나님은 왜 중단하지 않으셨을까요? 바로 당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한 번 더 경고하고 훈계하셨습니다(17-19절). 

하나님은 왜 똑같은 잔소리를 반복하실까요? 우리의 체질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② (32장) <모세의 노래>

모세는 "내가 죽은 후 너희가 불순종하고 여호와께로부터 돌아서서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을 안다"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그들과 수십 년을 함께 했지만 그의 소망은 별로 커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언젠가 포로 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마음의 할례를 베푸사 그들로 마음과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고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모세는 노래로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셨는데 그들이 장차 배역하여 이방인에게 멸망하겠지만 결국 하나님이 회복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첫 번째 노래가 승리의 노래(출 15장)였다면 두 번째 노래는 경고의 노래였습니다. 

장차 하나님이 이방인으로 유대인을 시기나게 하실 것도 예언했습니다(호 1:9, 롬 10:19). 이스라엘이 알 것은 여호와만이 전능자이시며(39절) 영원하신 자존자(40절, 출 3:14)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어떤 존재도 그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③ (33장) <모세의 축복>

모세는 야곱처럼(창 49장) 영적 아비로서 12지파를 축복했습니다. 유다는 지도자의 복을(7절), 레위는 영적인 복을(8-11절), 요셉은 땅의 복을(13-17절) 받았고, 시므온 지파만 제외됐습니다(민 25:14). 이스라엘이 행복자가 된 것(29절)은 하나님 같은 분이 없고, 하나님처럼 구원해 줄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수룬("의로운 자")은 이스라엘에 대한 명예로운 별칭이었습니다. 다만 모세의 노래에서는 반어적으로 쓰였습니다(32:15).

④ (34장) <모세의 죽음>

모세는 설교를 경고와 축복의 시로 마무리하고 산으로 올라가 죽습니다. 이렇게 토라가 끝나갑니다. 

모세는 아바림산맥(민 27:12) 북쪽 비스가산 정상인 느보 봉우리에서 약속의 땅을 보고 죽었습니다. 그는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7절). 수명이 다해서가 아니라 사명을 다해서 죽은 것입니다. 무덤을 알 수 없음은(6절) 하나님이 장사하셨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숭배치 못하게 하심입니다. 사명자는 사명이 끝나면 조용히 떠나야 합니다.

토라는 끝을 맺지만 아직 미해결 과제들이 남아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 여자의 후손은 언제 오셔서 악을 막으실지,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은 어떻게 아브라함 자손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실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나타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분의 백성들과 화해를 하실 수 있으실지, 신명기 30장에서 나오는 예언 즉, 하나님은 어떻게 그의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실지 등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앞으로 점차 나옵니다. 

  • 일관된 원칙에 따라 복과 화를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28장).
  •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9:5-6, 32:39).
  • 우리의 실패에도 돌아올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9:14-30:10).